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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릉두씨(杜陵杜氏, 만경)
유래
  • 두릉두씨는 시조를 달리 하는 두 계통으로 나뉜다.

    [ 두경령 계 ]
    시조 두경령(杜慶寧)은 중국 두릉 사람으로 북송(北宋)의 태종때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진종의 옹립을 반대하다 실패하여 소주자사(蘇州刺使)로 좌천되어 둘째 아들인 두지건을 데리고 임지로 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1004년(고려 목종7)에 우리나라 궁지도(宮地島. 지금의 고군산 열도)에 도착하였다. 고려 목종이 이를 알고 좌사관의 벼슬을 내리고 궁지도를 식읍으로 하사하고 두릉군에 봉하였다. 후손들이 그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두릉으로 하였다. 궁지도는 당시 만경현(萬頃縣)에 속했던 섬이다. 그래서 흔히 만경두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경령의 묘소는 전북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석불산에 있다.

    [ 두교림 계 ]
    시조 두교림(杜喬林)의 자는 정덕(正德)이다. 중국 명(明)나라 사람으로 기주자사(冀州刺史)를 지냈다. 두교림의 아들 두사충(杜師忠)이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 장군을 따라 구원군으로 와 수륙지주주사(水陸指晝主事)로 활약한 뒤 우리나라에 눌러 살면서 후손들이 두교림을 시조로하고 고향인 두릉을 본관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두철수(杜喆秀, 1852 壬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2년(1885) 식년시 삼등(三等)
 두시재(杜詩在, 1826 丙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0년(1873)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2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두사충(杜師忠)이 지금의 경북 대구에 머물러 살았고, 두사충의 4대손 두여환(杜如煥)이 대구 남산에서 성주로 이주한 사실이 나타나 있고, 3세 두일건(杜逸建)은 함경남도 함흥에 정착하여 함흥을 비롯한 함주군에 터를 굳혔다.
    항렬자

    •  두경령 계
      25世
      홍(洪)
      26世
      수(秀)
      27世
      병(炳)
      28世
      균(均)
      29世
      진(鎭)
      30世
      수(洙)
      31世
      동(東)
      32世
      희(熙)
      33世
      재(在)
      34世
      육(陸)
      35世
      현(鉉)
      36世
      순(淳)
      37世
      표(杓)
      38世
      환(煥)
      39世
      희(熙)
      40世
      재(在)
      41世
      육(陸)
      42世
      현(鉉)
      43世
      순(淳)
      44世
      표(杓)
      45世
      환(煥)
      46世
      -
      47世
      -
      48世
      -
      49世
      -
      50世
      -
      51世
      -
      52世
      -
      53世
      -
      54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6世孫은 25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중국(中國) 산서성(山西省)
    두릉(杜陵)은 중국에 있는 지명으로 장안(長安)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늘날 산서성(山西省)에 속해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두릉두씨는
    1985년에는 총 1,163가구 4,838명,
    2000년에는 총 1,741가구 5,70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